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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은 우리의 중심축을 상징한다. 등에 문제가 있는 건 대체로 자신이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걸 뜻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직장이나 가족, 배우자의 지원밖에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사실은 우주, 생명, 자체가 우리를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등 윗부분은 감정적인 지지가 부족하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남편/아내/애인/친구/사장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거나 지지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등 중간 부분은 죄의식과 관련된다. 우리는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보이지 않는 등위에 놓는다. 당신은 등 뒤에 있는 것을 보기가 두려운가? 아니면 등 뒤에 뭔가를 숨겨놓고 있는가? 혹은 등 뒤에서 비수를 들이대는 듯한 느낌을 받는가? 당신은 자신이 정말로 "고갈되어 버린" 듯이 느끼는가? 재정상태가 엉망진창이거나 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건 아닌가? 그렇다면 등 아래 부분이 당신을 성가시게 할지도 모른다. 금전 부족, 혹은 금전에 대한 걱정이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이다. 당신이 갖고 있는 돈의 액수가 얼마 인가 와는 전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며, 돈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없으면 정말로 살 수가 없는 훨씬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 있다. 그것이 뭔지 아는가? 바로 숨이다. 숨은 생명에게 가장 값진 자산이지만, 우리는 숨을 내쉴 때 다음 숨이 이어지리란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다음 숨을 못 쉬게 되면 우리는 3분도 못 가 죽고 말 텐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창조한 권능이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속될 만큼 충분히 많은 숨을 주었거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다른 것들 역시 충분히 제공되리라고 믿어야 하는 게 아닐까? 폐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내어놓는 능력을 상징한다.

폐에 생긴 문제는 대체로 우리가 생명을 받아들이길 두려워하거나 충만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자신에게 없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여성들은 예로부터 아주 얕은 숨을 쉬면서, 종종 자신들을 공간을 차지할 권리가 없는 이등 시민, 심지어는 살 권리조차 없는 이등시민으로 간주해왔다. 오늘날 이런 사고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성은 사회의 완전한 성원으로서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깊고 완전하게 숨 쉬고 있다. 스포츠계의 여성들을 보고 있노라면 즐겁다. 여성들이 들일은 늘 해왔지만, 스포츠계에 들어간 것은 내가 아는 한, 지금이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드러나는 그 멋진 몸매를 보는 것은 너무나 근사한 일이다. 폐기종과 지나친 흡연은 생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무가치하다는 깊이 감춰진 느낌을 가린다. 하지만 흡연 습관을 비난한다고 해서 그 습관이 바뀌지는 않는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기본 믿음이다. 가슴은 모성 원리를 상징한다. 가슴에 문제가 있는 건 대체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장소나 물건이나 어떤 경험에 대해 "과도한 모성애"를 보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모성 과정의 일부는 아이를 "자라게" 놔두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손을 떼야할지, 언제 고삐를 놓고 아이들을 내버려 둬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과잉보호는 그 피보호자가 나름의 체험을 준비하지 못하게 막는다. 이따금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의 "위압적인" 태도가 말 그대로 양분공급을 차단하는 것이다. 암이 관련되어 있을 때는 뿌리 깊은 노여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놓아버리고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우주 지성이 거하고 있음을 알아라. 피가 기쁨을 상징한다면 심장은 물론 사람을 상징한다. 심장은 온몸을 통해 사랑으로 기쁨을 펌프질 한다. 우리가 기쁨과 사랑을 부정하게 되면 심장은 사위어가고 식어간다. 결과적으로 피돌기가 굼떠지고, 빈혈과 협심증, 심장마비 따위가 우리 삶 속으로 기어들어온다. 심장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창조한 멜로드라마에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우리 주위의 사소한 기쁨들을 알아채는 것을 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심장에서 기쁨을 있는 그대로 다 짜내면서 몇 년 몇십 년을 보내고 나면, 심장은 문자 그대로 고통 속에 주 질러 앉고 만다.

심장마비 환자들은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만일 그들이 삶의 기쁨들을 음미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앉는다면, 그들은 조만간 다시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말 것이다. 고결한 심장, 차가운 심장, 열린 심장, 시커먼 심장, 애정 깊은 심장, 따뜻한 심장- 당신의 심장은 어떤 것인가? 위는 우리가 갖게 되는 온갖 새로운 발상과 경험들을 소화시킨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일, 혹은 누구를 소화할 수 없는가? 당신은 뱃속에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위에 문제가 있다는 건 대체로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겁을 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민간 항공기가 처음으로 대중화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철로 된 거대한 통 안에 사람이 들어가 앉고, 그것이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를 안전하게 수송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기념이었다. 비행기에 탄 사람들 대부분이 좌석마다에 달려 있는 구토용 봉지를 이용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신중하게 구토용 봉지 안에 토한 다음, 그것을 잘 싸서 승무원에게 넘겨주었다. 승무원들은 토사물을 쓸어 담느라 통로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구토용 봉지는 여전히 좌석마다 비치되어 있지만, 이제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날아다닌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소화해낸 것이다. 궤양은 두려움, "그다지 쓸모 있는 사람이 못 되리란" 엄청난 두려움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부모한테 충분히 좋은 자식이 못 될 것을 두려워하고, 사장에게 충분히 능력 있는 직원이 못 될 것을 두려워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 자신의 체면은 떠내 준 꼴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중요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더라도 내면의 자긍심은 대단히 낮은 상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